주한미군이 공무를 수행하다가 낸 교통사고로 손해를 입었다면, 배상을 청구할 상대는 사고를 낸 군인이나 미국 정부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입니다. 한미 SOFA 제23조 5항은 공무 중 발생한 손해에 대한 청구를 대한민국을 상대로 하도록 정하고 있고, 실제로 배상이 이루어지는지 여부와 그 범위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판단됩니다.

주한미군 사고인데 왜 대한민국 정부에 배상을 청구할까

피해자 입장에서는 사고를 낸 쪽이 미군이니 미국 정부나 주한미군사령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야 할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미 SOFA 제23조 5항은 주한미군 구성원이나 군속이 공무 수행 중 대한민국에서 제3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그 피해 청구를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 구조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손해배상 여부와 금액을 판단하고, 배상 책임이 인정되면 정부 예산으로 먼저 배상금을 지급합니다. 미국 측과의 비용 문제는 이후 한미 양국 정부 사이에서 별도로 정산되는 절차이며, 피해자가 그 정산 절차에 직접 관여하거나 미국을 상대로 별도 소송을 제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공무 중' 사고인지가 배상 주체를 가르는 이유

같은 주한미군 소속 차량이 낸 사고라도 그 사고가 공무 수행 중 발생했는지, 개인적인 용무 중 발생했는지에 따라 배상 청구 구조 자체가 달라집니다. 공무 수행 중 발생한 사고는 앞서 설명한 SOFA 23조 5항과 국가배상법 체계 안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처리되지만, 근무시간 외 개인적인 외출이나 휴가 중처럼 공무와 무관한 상황에서 발생한 사고는 이 체계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공무와 무관한 사고에서는 국가가 배상 책임을 지는 근거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므로, 피해자는 사고를 낸 개인을 상대로 일반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결국 사고 당시 상황이 공무 수행에 해당했는지가 이후 배상 청구를 누구에게, 어떤 법적 근거로 할 것인지를 가르는 첫 번째 기준이 됩니다.

대법원 2023다205968 판결이 보여주는 실제 처리 방식

이 구조가 실제 사건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2023년 6월 29일 대법원이 선고한 2023다205968 판결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2020년 8월 26일 경기 포천시 영로대교에서 음주운전 차량이 주한미군 소속 M1046 궤도장갑차와 충돌해 운전자와 동승자 등 3명이 숨진 사고를 배경으로 합니다.

보험사가 피해자 측에 보험금을 지급한 뒤 대한민국을 상대로 구상금을 청구하면서, 주한미군 구성원의 공무집행상 과실이 인정되는지, 그리고 미군 공용차량인 궤도장갑차에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이 적용되는지가 쟁점이 됐습니다. 대법원은 주한미군 구성원에게 공무집행상 과실이 있었다고 보아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은 이 사고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이 아니라 국가배상법이 적용되는 이유

일반적인 자동차 사고라면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따라 운행자가 무과실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책임을 지는 구조가 우선 적용됩니다. 그런데 이 판결은 미군 공용차량에는 이 법이 적용되지 않고,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전단만 적용된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습니다.

구분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국가배상법(주한미군 공용차량 사고에 적용)
책임 구조운행자책임에 가까운 구조로, 운행자가 스스로 무과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책임을 짐공무원의 고의·과실이 인정되어야 비로소 책임이 발생하는 과실책임 구조
청구 상대등록된 차량의 운행자공무 수행 중인 대한민국 정부
이 사건 적용 여부적용되지 않음SOFA 23조 5항에 따라 실제 배상 근거로 적용됨

대법원은 두 가지 근거를 들었습니다. 하나는 SOFA 제24조가 주한미군 공용차량에 대해 일반적인 자동차 등록번호판이 아닌 별도의 식별 기호만을 요구하고, 자동차관리법 역시 이러한 공용차량을 등록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상호주의로, 대한민국 군대의 공용차량 역시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만큼 주한미군 공용차량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 균형에 맞는다는 점입니다.

적용 법이 달라지면 피해자의 입증 부담도 달라진다

어떤 법이 적용되는지는 단순한 조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배상이 인정되는지를 가르는 실질적인 차이로 이어집니다.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이 적용됐다면 운행자 측이 스스로 과실 없음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배상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가 됩니다.

반면 국가배상법이 적용되면 피해자 쪽에서 공무원, 즉 주한미군 구성원의 고의나 과실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위 사건에서는 법원이 결과적으로 미군 측 과실을 인정해 배상책임이 인정됐지만, 만약 그 과실이 사고 정황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면 국가배상법 구조 아래에서는 배상책임 자체가 부정될 여지도 있었습니다. 같은 사고라도 어떤 법 조항이 적용되는지에 따라 배상 성립 여부의 문턱이 달라지는 셈입니다.

한미 양국의 비용 정산은 피해자의 청구와 무관하다

SOFA는 대한민국이 먼저 배상한 뒤 미국 측 책임이 인정되는 사고에 대해 한미 양국 정부가 그 비용의 일부를 정산하는 절차도 함께 두고 있습니다. 이 정산은 어디까지나 두 정부 사이의 내부 절차이며, 피해자가 배상을 받기 위해 미국 정부나 주한미군을 상대로 별도로 청구하거나 그 정산 비율을 다퉈야 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사고 정황에 따라 달라지는 실제 판단 지점

같은 주한미군 교통사고라 해도 결과는 사고 당시 구체적 정황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사고 차량이 공용차량인지 개인 소유 차량인지, 운전자가 근무 명령에 따라 이동 중이었는지, 사고 원인이 상대방의 과실인지 미군 측 조치 미흡 때문인지에 따라 국가배상책임 인정 여부와 적용 법 조항이 함께 바뀝니다.

2023다205968 판결에서도 사고의 직접 원인은 음주운전 차량 쪽에 있었지만, 정차 중이던 궤도장갑차 측에 별도의 공무집행상 과실이 인정되면서 국가배상책임이 함께 성립했습니다. 이처럼 사고 원인이 여러 당사자에게 걸쳐 있는 경우에는 미군 측 과실의 존재와 정도를 어떻게 입증하느냐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배상 청구의 실제 성립 여부를 좌우하는 지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