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관련자가 낸 교통사고의 재판권은 국적만으로 정해지지 않고 사고 당시 공무집행 중이었는지에 따라 갈립니다. 공무 중 사고로 인정되면 미국이 먼저 재판할 권리를 가지지만, 사고를 낸 사람이 군인인지 군속인지에 따라서도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재판권을 가르는 첫 번째 기준은 '공무집행 중'이었는가입니다

한미 SOFA 제22조는 주한미군 구성원이 한국 영역 안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어느 나라가 먼저 재판권을 행사할지를 정해 놓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 양쪽 모두 처벌할 수 있는 범죄가 겹치는 경우, 출발점은 사고 당시 그 사람이 공무수행을 요구하는 행위 중이었는지 여부입니다.

공무집행 중 사고로 인정되면 미국이 1차 재판권을 가지고, 개인적인 용무로 운전하다가 낸 사고처럼 공무와 무관한 경우에는 한국이 1차 재판권을 가집니다. 교통사고는 이 경계가 자주 문제 되는 유형인데, 부대 업무를 위한 운행과 출퇴근이나 개인 용무 운전의 구분이 사건마다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공무집행 여부는 누가, 어떤 절차로 정할까요

공무 중이었는지는 사고를 낸 사람의 주장만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미군 측이 발급하는 공무증명서를 통해 판단되며, 이 증명서는 장성급 장교만 발급할 수 있습니다. 한국 측은 이 판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한미 형사재판권분과위원회나 외교 경로를 통해 조정하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미군 장갑차 교통사고는 왜 미국 군사법원에서 재판했을까요

2002년 훈련을 마치고 이동하던 주한미군 장갑차가 도로를 걷던 여중생 두 명을 치어 숨지게 한 사고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사고 당시 가해 장병들은 부대 임무를 수행하던 중이었다는 이유로 공무 중 사고로 인정되었고, 이에 따라 미국이 1차 재판권을 행사하면서 사건은 한국 법원이 아닌 미군 군사법원에서 다뤄졌습니다.

재판 결과 두 장병 모두 무죄 평결을 받았고, 두 명이 숨진 사고에 대해 아무도 형사책임을 지지 않는 결과에 국민적 공분이 일었습니다. 이후 정부는 공무 여부에 이견이 있을 때 형사재판권분과위원회와 외교 경로를 통해 한국 측 의견을 더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방향으로 SOFA 운용 개선을 추진했습니다.

사고를 낸 사람이 군인이 아니라 군속이라면 결론이 달라집니다

위 사례처럼 군인이 낸 공무 중 사고는 미국이 재판권을 갖는 경우가 있지만, 사고를 낸 사람이 군무원 신분인 군속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대법원은 2006년 경기 파주에서 교통사고를 낸 주한미군 소속 군속에 대해 한국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06. 5. 11. 선고 2005도798 판결).

SOFA 제22조에 대한 합의의사록은 평상시에는 미군 당국이 군속에 대해 유효한 형사재판권을 가지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사고 당시 공무 중이었는지를 따지지 않고도 한국이 SOFA 제22조 제1항(나)에 따라 바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군인은 자국 군사법 체계 안에서 재판받을 수 있는 신분이지만, 민간인 신분인 군속은 평시 미군 군사법원의 재판 대상 자체가 아니기 때문에 나타나는 차이입니다.

한국에서 오래 거주해 온 군속이라면 SOFA 특례 자체가 적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판결에는 또 하나의 판단 지점이 담겨 있습니다. SOFA 제1조는 '군속'의 정의에서 통상적으로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있습니다. 해당 사건의 피고인은 10년 넘게 한국에 거주하며 한국인 배우자와 가정을 이루고 생활 근거지를 한국에 두고 있었고, 법원은 이런 사정만으로도 SOFA가 정한 '군속'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신분상 군무원으로 등록되어 있어도 생활 기반이 사실상 한국에 있는 사람이라면, SOFA에 따른 재판권 특례를 주장하기 전에 이 거주 요건부터 걸릴 수 있습니다.

사고를 낸 사람의 상황1차 재판권근거
군인, 공무집행 중 사고로 인정미국SOFA 제22조, 공무증명서
군인, 공무와 무관한 사고(개인 용무 등)한국SOFA 제22조
군속, 평시(공무 여부와 무관)한국SOFA 제22조 합의의사록, 대법원 2005도798 판결
통상적으로 한국에 거주해 온 군속한국(SOFA 특례 미적용)SOFA 제1조 '군속' 정의

미국이 1차 재판권을 가져도 한국에서 재판받을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공무 중 사고로 인정되어 미국이 1차 재판권을 가지는 경우라도 그것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SOFA는 1차 재판권을 가진 나라에 대해 상대국이 재판권을 넘겨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절차를 두고 있고, 요청받은 나라는 정해진 기간 안에 응답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실제로 이 요청이 받아들여지는지는 사안의 중대성과 양국 간 협의 결과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고를 낸 사람의 신병을 어느 나라가 데리고 있는지는 재판권과는 별개 문제입니다. 살인, 강간, 약취·유인, 불법 마약거래, 방화, 흉기강도, 폭행치사,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 등 결과가 중대한 유형에 대해서는 한국이 기소하는 시점에 신병을 인도받을 수 있도록 별도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 유형에 속하지 않는 사고라면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미군 측이 신병을 데리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판을 누가 하는지와 신병을 누가 구금하고 있는지는 같은 질문이 아닙니다.

형사재판과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는 별개로 진행됩니다

형사재판권이 어느 나라에 있는지는 가해자를 처벌하는 문제이고, 사고로 다치거나 재산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배상을 받는 절차는 이와 별도로 진행됩니다. 공무 중 사고로 미국이 형사재판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도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 자체가 막히는 것은 아니며, SOFA는 치료비 사전 지급을 포함해 배상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도록 양국이 노력하는 조항도 함께 두고 있습니다. 재판권 소재와 배상 절차를 같은 문제로 보고 접근하면 실제 대응 방향을 잘못 잡을 수 있습니다.